韓語・弥彦の文化遺産

HOME > 韓国語・弥彦村の紹介 > 韓語・弥彦の文化遺産
 

















▼보물전(寶物殿)

국가 중요 문화재의 「시다노오오타치(志田大太刀)」「오오테츠바치(大鉄鉢)」. 현(県)의 지정 문화재인 「키누다세이지하카마고시다이코로(砧青磁袴腰大香炉)」 「산케마사요시사쿠오오타치(三家正吉作大太刀)」「카가미쿠라츠케타리쯔보아부미(鏡鞍附壺鐙)」 「우에스기테루토라 기원문(上杉輝虎祈願文)」을 비롯하여 야히코 신사 전래의 보물이나 문화재가 공개되어 있습니다.

  ■야히코 신사
(MAP-
YAHIKO A)

현재의 신사는 이토 츄타(伊東忠太) 박사의 설계에 의해 1916년에 재건된 것입니다. 이들 건축물・구조물 25건이 1998년 국가 등록 유형 문화재가 되었습니다.

▼토바시라 신사 사전(十柱神社社殿)(국가 중요 문화재)

야히코 신사 경내의 말사. 1694년 나가오카(長岡) 번주 마키노(牧野)씨의 봉납으로 건물의 길이 3間, 기둥과 기둥 사이의 길이 3間으로 이루어졌다. 지붕은 새로 하였다. 그 형식은 간소합니다만, 카에루마타(蛙股)・코료(紅梁)・ 코부시바나(拳鼻) 등의 무늬 조각에 모모야마(桃山) 말기의 양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1950년 국가 중요 문화재에 지정되었음.

■메이지 천황 행재소 유적
(MAP-YAHIKO
B)

메이지 천황이 북륙(北陸)을 순행할 때 야히코에서 이가라시 모리아츠(五十嵐盛厚) 댁의 부지 안에 있는 정원에 행재소가 마련되어 숙박하셨습니다. 건물은 1912년 의 야히코 대화재로 소실되어 현재는 정원이 축조되었으며, 행적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야히코 신사 육상 경기장 행적비
(MAP-YAHIKO
C)

타이쇼(大正)의 야히코 신사 재건 사업의 하나이다. 1919년 일본 최초의 400m 트랙을 비치한 육상 경기장이 완성되었으며, 여기에서 매년 니이가타현(新潟県)의 경기회가 개최된 것으로 현 내의 경기 인구와 레벨의 향상에 공헌하였습니다. 1950년 경기장은 경륜장으로 바뀌어 행적비만이 남아 있습니다.

■보광원(寶光院)
(MAP-YAHIKO
D)

 

아미다도(阿弥陀堂)의 타몬텐리츠조(多聞天立像)(현 지정 문화재)는 1328년의 작품으로 원래는 용지사(龍池寺)의 산문(山門)에 있었습니다만, 폐사(廢寺)됨에 따라 보광원에서 보관하게 된 불상. 경내 뒤쪽에 있는 바바스기(県의 천연 기념물)은 나무의 나이 약 천년인 삼나무의 거목으로 「야사부로바사(弥三郎婆)」의 전설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바바스기.

 

  ■야히코 벚나무(弥彦桜)
(MAP-YAHIKO
E)

 

야히코 산꼭대기 전망 빌딩 앞면에 있는 벚나무의 거목으로 시로야마자쿠라(白山桜)의 변종이다. 줄기 둘레 370cm, 꽃은 중간크기이며 외겹으로 된 꽃잎, 색깔은 희고 밑부분에 홍색을 나타냅니다.

■메이쿤교의 유적(明訓校之趾碑)
(MAP-YAHIKO
F)

야히코의 메이쿤교는 1883년 국학, 유학의 정신을 바탕으로 서양 학술도 가르치고 국가의 유능한 인재를 육성할 목적으로 개교되었습니다. 교장은 오오하시 이치조(大橋一蔵)이며, 다음 해 메이지 천황으로부터 용돈 300엔을 하사받을 정도로 융성하였습니다만, 13년 후의 1896년에 폐교되었습니다.

 

  ■타코케야키(현의 천연 기념물)
(MAP-YAHIKO
G)

야히코 신사의 말사인 스미요시 신사의 작은 신사를 뒤덮듯이 서 있는 느티나무 노목. 나무 나이 800년 이상, 거대한 줄기에서 지상으로 곧게, 큰 가지가 팔방으로 퍼져 있기 때문에 이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쇼닝시미즈(聖人清水)
(MAP-YAHIKO
H)

정토진종의 종조 신란쇼닝(親鸞聖人)이 야히코 신사를 참배했을 때,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던 주민을 불쌍히 여겨 하야시베가(林部家)의 죽림의 한 모퉁이를 가지고 있던 지팡이로 찔러 부처님에게 염불했더니, 갑자기 물이 펑펑 솟아났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야히코 참도 삼나무 가로수(県의 천연 기념물)
(MAP-YAHIKO
I)

야히코와 구 홋코쿠 가도(北国街道)(北陸道)의 역참으로서 번화하였습니다. 신사는 이 길이 야히코 지역 안에 접하는 남북의 양측 약 350m에 걸쳐 참도로 삼나무를 심어 소중하게 가로수를 지켜왔습니다. 차츰 노목이 되어 말라 죽거나 쇠함이 두드러졌기 때문에 1974년 야히코 참도 삼나무 가로수 보존회를 결성하여 보식(補植), 시비(施肥), 가지치기 등 보호에 힘쓰고 있습니다.

■키쿄죠아토(桔梗城跡)(마을 사적)
(MAP-YAHIK
O J)

시로야마 산림 공원(城山森林公園)에 있는 고성지(古城址)이다. 헤이안 시대 야히코 압사(庄司: 장원영주로부터 임명되어 장원 내의 연공을 거두어 치안 유지 등을 관장한 직업)인 키치가와 무네카타(吉川宗方)가 여기에 성을 축조하여 쿠로토리 효에(黒鳥兵衛)의 난을 막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전국시기에는 성주 구로다 히데타다(黒田秀忠)가 나가오 카게토라(長尾景虎)에 항거하여 자살, 그 후에는 후모토(麓)의 쿠로타키 죠(黒滝城)의 지배하에 들어 갔습니다. 1598년 폐성되었음.

 

■구 타케이시가(武石家) 주택
(MAP-FUMOTO A)

새로 인 지붕의 중농 민가를 각각의 건축 당시의 모습으로 해체 복원하였습니다. 안채가 가장 오래되었으며, 300년 전, 에도 중기의 건축으로 마을 지정 문화재입니다. 미소구라(味噌蔵)는 메이지 초기, 마키고야(薪小屋)는 1929년의 건축으로 2개는 등록 유형 문화재입니다.
 

  ■쿠로타키죠(黒滝城) 유적
(MAP-FUMOTO
B)

카스가야마죠(春日山城)의 지성(支城)으로 중세의 동란기에 「쿠로타키요가이(黒滝要害)」로 불리어 우에스기 겐신(上杉謙信)・카게카츠(景勝)의 아가키타슈(楊北衆) 지배의 전선 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달성하였습니다. 혼마루(本丸) 유적을 중심으로 산허리에 걸쳐 둘러싸인 곳이나 토루(흙으로 쌓은 보루), 동굴의 유구(遺構)가 있으며, 서방 분화구 주변에는 성채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관(館)은 산기슭 집락에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우에스기(上杉)씨가 아이즈(会津)로 영지를 변경함에 따라 폐성되었습니다. 1986년 마을 문화재로 지정되어 현재는 죠시(城址) 공원으로 되어 있습니다.

■잇폰스기 유적(一本杉遺跡)
(MAP-FUMOTO
C)

5000~4000년 전의 죠몬(縄文) 중기~후기의 유적이다. 출토품은 토기 조각, 석촉(石鏃: 돌로 만든 화살촉)이 많으며, 돌도끼, 석추(石錘: 돌로 만든 그물추), 석시(石匙: 작은 돌칼), 비취(翡翠), 、마노(瑪瑙) 등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건물의 기둥 흔적도 확인되고 있지만, 유적의 전모는 불명확합니다. 이 부근에는 종만당(種満堂)의 잇폰스기 전설이나 쟈쿠즈레(蛇崩) 전설이 남아 있으며 1994년 마을 문화재에 지정되어 일부 사적 공원으로서 정비되었습니다.

 

  ■사루가바바 고개
(MAP-FUMOTO
D)

1509년 야히코 영주가 에치고 슈고다이 나가오 타메카게(越後守護代長尾為景)와 전쟁하여 패한 옛 전장터이다. 높이는 180미터에 지나지 않지만, 구 홋코쿠 가도(北国街道)의 난소로 불릴 정도로 겨울철에는 난삽한 고개이다. 1935년경까지는 찻집이나 탕치장도 있었습니다. 야히코 산이 잠시 동안 후지산의 형태로 보여서 「미아시후지(三足富士)」로 불리는 장소가 있었으며 길 옆에 그것을 읊은 노래 비석 등이 남아 있습니다.

■호쿄인다라니 탑(宝篋印陀羅尼塔)
(MAP-FUMOTO
E)

 

홋코쿠 가도의 사루가바바 고개 북쪽의 조금 높은 동쪽 끝에 서 있는 큰 석탑. 본래는 호쿄인다라니 경문(経文)을 보관하는 탑이지만, 카마쿠라 중기부터 묘비나 공양 탑으로 건축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1771년 테라도마리항(寺泊港)의 혼마야 헤이지(本間弥平治) 외 2명이 선조 백세기(百歲忌), 부모 50회 보제(사후의 명복)를 위하여 세웠다고 새겨져 있습니다.

 

  ■메이지 천황 후모토 쉼터 유적(麓御小休所跡)
(MAP-FUMOTO
F)

메이지 천황의 북륙 순행은 1878년의 일이며, 9월 15일 테라도마리에서 야히코에 향하시는 도중에 여기에서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이 쉼터는 후모토(麓) 마을의 호장(戶長)을 맡고 있던 혼마가(本間家)가 부지 내에 자비로 신축한 1동의 건물을 사용하게 한 것이다. 약간 높게 지어진 건조물에 있는 동향(東向) 정원에서는 잇뽄스기 유적을 비롯하여 넓디넓은 전망이 좋습니다.

■사쿠라이(桜井) 신사(히야코 신사 섭사(본사의 제신과 인연이 깊은 신을 모신 신사)
(MAP-FUMOTO
G)

아메노카구야마노미코토(天香山命)가 북륙 평정 중에 요네미즈노우라(米水浦)(현재의 노즈미하마(野積浜)에 상륙한 후, 잠시 여기에서 체류하여 강물로 몸을 씻으시어, 야히코지에 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작은 본전의 전방에 지붕을 떠받히는 4개 기둥만의, 흔하지 않는 건축 방법의 배전(拝殿)이 있다. 사쿠라이(桜井)는 샘을 뜻하는 것으로 경내에는 지금도 맑은 샘물이 솟아나고 있으며 거대한 3개의 늙은 느티나무와 함께 역사를 말해 준다. 「와묘쇼(和名抄)」의 에치고 쿠니칸바라고(越後国蒲原郷)에 나오는 사쿠라이(桜井)는 이 지역을 말합니다.

 

  ■관음사(觀音寺)
(MAP-FUMOTO
H)

 

에치고 33관음 제 23번 후다쇼(越後三十三觀音第二十三番札所). 본존은 성관세음보살(聖觀世音菩薩)이다.  1084년~87년, 조정은 아베노 사다토(安倍貞任)의 잔당 쿠로토리 효에(黑鳥兵衛) 정벌에 키타바타케 토키사다(北畠時定)를 파견하였지만, 무운이 나빠 전사하였기 때문에 이 지역에 무덤을 세워 수호 본존을 안치한 것이 현재의 관음사라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야히코산 스카이라인 층계 어귀에 있으며 도중에 「코레요리니쥬핫쵸미기카우치사마유키」와 서생사(西生寺)에의 도로 표지가 있습니다.

■구 후모토(麓) 소학교 교사(校舍)(야히코 마을 후루사토 학교)
(MAP-FUMOTO
I)

 

1904년 야히코 미나미 진죠 고등 소학교(南尋常高等小學校)가 신교사 낙성에 따라 여기에 이전하여 1970년 3월 야히코 소학교에 통합될 때까지 여기에 후모토 소학교가 있었습니다. 현재는 공민관 후모토 지관으로 이용. 1층의 3교실은 「야히코 마을 후루사토 학교」로서 체험 학습이 가능한 민속 자료의 전시실로 되어 있습니다. 。

 

  ■관음사 큐자에몬(觀音寺久左衛門) 부지 유적
(MAP-FUMOTO
J)

 

대대로 마츠미야큐자에몬(松宮久左衛門)을 칭한다. 부지는 3천평, 집 주변은 돌 담으로 둘러싸인 대자산가이다. 10대째 큐자에몬(久左衛門)(본명 유지로(雄次郞))일 때에는 산죠베츠잉(三條別院)의 기일을 앞당겨 올린 제사와 야히코의 등롱(燈籠) 축제가 되면 에치고(越後) 중의 우두머리가 모이는 풍습이었다고 합니다. 무진(戊辰) 전쟁에서는 막부 군대의 편에 서서 참전하였지만, 패하여 아이즈(会津)・요네자와(米沢) 방향으로 도망갔으나 체포되어 집은 화공(火攻)을 당했습니다. 나중에 용서받아 관음사에 되돌아 왔지만, 만년에는 불우하였습니다.


■로쿠부가(六部家)
(MAP-FUMOTO
K)

관음사의 구 홋코쿠 가도를 따라서는 1772의 표시가 있는 로쿠쥬로쿠부쿠요(六十六部供養) 탑. 에도 말기의 코신(庚申) 탑, 1821년의 니쥬산야(二十三夜) 탑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길의 동쪽에는 지장존(地蔵尊)(대좌만)있습니다.

 

  ■구 홋코구 가도(旧北国街道)
(MAP-FUMOTO
L)

테라도마리(寺泊)에서 야히코(弥彦)・카쿠다(角田) 산록을 통과하여 아카쯔카(赤塚)(니이가타시)를 거쳐 니이가타쵸에 이르는 길이다. 이 부근은 근세에는 호쿠리쿠오우칸(北陸往還)・홋코쿠오우칸(北国住還)・호쿠리쿠도(北陸道) 등으로 불렀지만, 고대의 호쿠리쿠도와 구별하기 위하여 연선의 정촌(町村)과 함께 홋코쿠 가도로 하였습니다. 야히코 산 스카이라인에 의해 옛 도로가 촌단되어 허물어져 떨어진 부분도 있지만, 후모토(麓)의 스와(諏訪) 신사에서 사루가바바 부근까지는 옛 길이 남아 있습니다. 야히코 지역 내에 들어가면 현(県) 지정 천연 기념물「야히코 참도 삼나무 가로수」로 이어집니다.

■치고도(稚兒道)
(MAP-FUMOTO
M)

야히코 신사에서 후모토・분스이를 연결하는 마을 길(구 県道)와 병행하여, 마치 숨바꼭질하듯이 야히코 연산(連山)의 산기슭을 통과하는 옛 길이 있었습니다. 코쿠죠사(国上寺)에서 야히코 신사에 젖먹이 아기가 지나간 길로 현재는 소실된 부분도 있습니다만, 후모토와 관음사에 일부에는 잘 남아 있습니다.

 

■야하기의 니혼마츠(二本松)(마을 천연 기념물)
(MAP-
YAHAGI A)

공무 사무소의 바로 서쪽에 있는 2그루의 소나무 거목. 높이 약 10m, 가지는 36m로 사방에 걸쳐집니다. 헤이안 말기 겐지(源氏)의 미나모토노요시쯔네(武将源義経)・벤케이(弁慶) 주종(主従)이 오우슈(奥州) 도착 도중에 이 나무의 밑동에서 휴식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소즈이사(照瑞寺)
(MAP-YAHAGI
B)

문 앞에 있는 이다무라 카이키 와타나베가(井田村開基渡辺家)의 묘지의 비문「무념이조율수권덕(無念爾祖聿脩厥徳)」은 라이산요(頼山陽)의 문필이 됩니다. 쇼로우몬(鐘楼門)은 후모토(麓)의 토미타가(庄屋冨田家)의 문을 1941년에 물려받아 재건한 것입니다.

■이나바쯔카(稲葉塚) 고분(마을 문화재)
(MAP-YAHAGI
C)

이다(井田) 구릉의 포도산에 있는 원형 분구(墳丘)에 방형 분구를 부설한 고분이다. 고분 길이 26.3m(아야메즈카(菖蒲塚)의 절반), 높이는 1.72m에서 1.28m의 柄鏡形(손잡이가 달린 원형 거울형)으로 에치고에서는 가장 오래된 부류에 속하는 전기의 고분입니다.

 

  ■오오토리이(大鳥居)
(MAP-YAHAGI
D)

야히코 신사 오오토리이는 1982년, 쵸에츠 신칸센(上越新幹線) 개통을 기념하여 세워졌습니다. 높이 30m, 현판은 12첩(畳)이라는 사에서도 그 크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호엔사(法圓寺)
(MAP-YAHAGI
E)

 

종루(종을 달아두는 누각)은 1856년, 산문(山門)은 1854년의 건축으로 모두 마을 문화재이다. 동량(棟梁)은 마제다이쿠 시노하라 가자에몬(間瀬大工篠原嘉左衛門)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조각은 많이 이용되고 있지만,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굵은 구조재가 호쾌하고 복잡한 구성을 유지하며, 도리(桁)보다 아래는 모두 느티나무 목재를 사용하고 있는 등 여러모로 고안하고 있습니다. 경내에는 양관(良寛)의 구비(句碑)와 가비(歌碑), 설명비(説明碑)가 있습니다.

 

  ■지겐사(慈眼寺)
(MAP-YAHAGI
F)

 

창건은 야하기(矢作) 출신의 명승 겐노 신쇼(玄翁心昭)로 전국 각지에 절을 건립하고, 후에 고향으로 돌아가, 조부와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 위해 1353년 여기에 절을 창건하였습니다. 겐노(玄翁)는 시모쯔케(下野)(토치기현(栃木県))나스가하라(那須ヶ原)에서 살생석(殺生石)을 때려 부순 고사로 널리 알려져, 이 고사에서 석공이나 목수가 사용하는 철제의 망치를 겐노우로 칭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 facebook公式ページへ
  • 彌彦神社・初詣
  • スマートフォンを持って弥彦を歩こう!
  • FREESPOT導入施設急速拡大中!!ビジネス&モバイラーも安心♪
  • 良寛も歩いた弥彦浪漫の道
おしらせ
さくら情報 (30)
紅葉情報 (40)
お知らせ (168)
春の山野草情報 (12)
  • 新潟県弥彦村のふるさと納税
  • 伊彌彦米特設サイト
  • JR EAST PASS
  • JR EAST PASS
  • JR EAST PASS